『컬트 포르노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의 내용 중 ‘11개 메피스토의 선언’의 부분 발췌와, 이 책에 대한 몇 가지 말을 남깁니다
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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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이 고공시위를 끝내고 돔에서 내려왔다. 그녀들은 투쟁 과정에서 네 명의 동지를 잃어야 했다. 사망자 명단에는 청소노동자의 대표이자 천재 안무가인 순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더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농성 마지막 날 투신자살한다. 이것으로 (주)도롱뇽수도원이 전 세계 여성 노동자들의 성지가 되는 악몽도 끝이 났다. 청소노동자들의 고공시위는 상처만 남긴 패배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은 그녀들이 농성을 마친 후,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낭독은 ‘상처투성이의 로라’(가명, 39세)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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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무도 아무를 사랑하지 않아.
        뼈아프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아무도 아무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어도 사람들은 자기 몸에 있는 털 하나를 뽑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 11인의 청소노동자들 역시 지금껏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므로 우리에게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런 현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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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똥냄새가 난다, 서로를 의심하다.
        우리 청소노동자들은 고공시위를 하는 동안 네 명의 동지를 잃었다. 어떤 동지는 경찰들의 강경 진압에 저항하다 투신을 선택했다. 다른 동지는 허탈과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고립된 상황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서로를 미워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걸까? 누구 때문일까? 누가 우리를 선동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지금 이 순간,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했으므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 먹을 것을 가지고 우리는 싸웠다. 옆 사람이 자기보다 많이 먹는다고, 돼지 같은 년이라고 불평했다. 참았던 불만들이 폭발했다. 누군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옆 사람 몸에서 똥냄새가 난다고 했다. 비난한 사람도, 비난을 받은 사람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똥냄새라니? 사실 똥냄새가 났다. 모두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우리의 몸에선 똥냄새와 땀에 쩐 내가 났다. 역겨운 동물 냄새가 났다. 당연하지 않은가, 똥조차 마음대로 눌 수 없는 상공에서 몸을 씻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먼저 똥 얘기를 꺼낸 동지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 사람도 따라 울었다. 울음은 금세 전염됐고 어느새 우리 모두 울고 있었다. 우리는 애들처럼 큰 소리로 울었다. 자신들이 창피하고 한심해서 우리는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보니 나중엔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똥냄새를 맡으며 웃으면서 울었다.
6. 가장 공평한 것.
        죽음이란 무엇일까?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고립이 계속될수록 죽음은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아주 공평해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물론 그들은 우리와 달리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개체로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늦고 빠름이 있을 뿐 모두가 죽었다. 그 늦고 빠름도, 유전되는 그 모든 것들도 긴 우주의 시간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어쨌든 끝이 나게 되어 있었다. 마지막엔 영원하고 차가운 죽음이 있을 뿐이었다. 그다음 같은 건 없었다. 저 높은 돔 위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갓 지은 밥 냄새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영원한 진리와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와 반대로 우리가 원한 것은 신속한 소멸이었다. 소멸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내줄 수 있었다. 우리는 투쟁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우울과 증오가 사라졌다. 고통스럽던 육체도 한결 가벼워졌다. 왜 진작 포기할 생각을 못 했을까. 그 순간 그가 우리를 찾아왔다.
7. 메피스토.
        그는 자신을 메피스토라고 소개했다. 투쟁하기 전부터 우리를 지켜봤으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제안을 해왔다. 어차피 잃을 게 없었으므로 우리는 제안을 들어보기로 했다. 집단 마술에 걸린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미친 척하면 그만이었다.
        메피스토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극장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처럼 생생한 이미지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노동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외모는 유인원과 닮았지만 노동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매우 특이한 종이었다. 그들은 노동을 하면서 쾌락을 느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노동했다. 그들은 스스로 노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이 노동의 과잉을 낳았다. 그런 특징 때문에 그들에겐 호모 로보투스(Homo Robotus)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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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탄광이 무너져 내렸다. 동료들의 죽음에 익숙했던 광부들은 자신들도 곧 죽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너무나 확실한 죽음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거의 처음으로 노동을 멈추었다. 그것은 매우 낯선 일과였다. 죽음을 기다리며 주어진 짧은 휴식시간 동안 그들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혹시라도 구조되어 다시 노동에 시달리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들은 마지막 휴식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산소를 아껴가며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메피스토는 다음 장면으로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방직공장 풍경을 보여주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방직기에 매달려 있다. 끊어진 실을 찾아내 재빨리 묶어주지 않으면 불량품이 생기고 아이는 작업반장에게 매를 맞아야 한다. 식사시간이 된다. 하지만 방직기는 멈추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방직기를 돌렸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자본가와 공장주는 기계를 돌릴 것이다. 기계가 멈추지 않는 한 아이도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아이의 구세주가 등장한다. 바로 아이의 엄마다. 그녀는 잠시라도 손을 쉬게 할 수 없는 아이 옆에서 밥을 떠먹여 준다.
        다음 화면에 아우슈비츠가 나왔다. 사회주의 집단농장도 나왔다. 두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똑같은 구호가 쓰여 있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히틀러도, 스탈린도 노동을 찬양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노동을 찬양했다. 마르크스도, 마오도, 김일성과 박정희도 노동을 찬양했다. 노동시인과 노동운동가들도 노동을 찬양했다. 아무도 솔직하게 노동이 좋같다고 말하지 않았다. 공장은 물론이고 학교도, 교도소도, 군대도, 감옥도, 삼청교육대도, 형제복지원도 노동을 찬양했다. 노동을 의심하는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 거대한 공통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다.
        우리는 속아왔음을 눈치챘다. 착취가 있기 이전에 왜곡된 노동이 있었다. 노동이 신성하다고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사기꾼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선동하는 자들일수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신성하다는 노동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것도 노동인지가 궁금했다. 저 높은 돔 위에서 우리는 막연히 예술이라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며 잠시 그리워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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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메피스토가 보여준 것은 끔찍한 테러 장면이었다. 금속 폭발물이 터졌고, 누구 것인지 알 수도 없는 팔다리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도시의 뒷골목에선 아동매춘과 장기매매가 성행했다. 침팬지가 실험실에서 비행기 조종 훈련을 받았다. 실수를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이 가해졌다. 조종간을 놓친 침팬지는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떨었다. 대양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고래 포획 장면이 나왔다. 인간은 첨단 기계장치를 동원해 자신보다 백 배나 거대한 고래를 죽였다. 작살 끝에는 폭약이 설치되어 있어서 고래 몸에 박히는 순간 내장까지 파괴했다. 바다가 고래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메피스토는 노동을 멈추지 않는 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우리를 유혹했다. 그는 과잉된 노동이 엄청난 폭력으로 축적된다고 말했다. 과잉된 노동은 생화학무기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과 핵탄두가 됐다. 땀은 피로 변질됐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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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메피스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에게 뇌와 지방을 나눠주었고 대신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노동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
        (이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네 명의 청소노동자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기자회견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부활한 순이’가 ‘상처투성이의 로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는다)
        우리 열한 명의 노동자 아니, 11개의 메피스토는 (주)도롱뇽수도원을 떠난다.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우리는 더이상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국가나 기업 등 전쟁에 협조하는 그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며, 임금을 미끼로 한 강요된 노동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전 세계의 메피스토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선적인 노동의 역사를 폭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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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메피스토는 이중나선 구조를 권력, 자본의 탐욕(이기적인)과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의 노예근성(이타적인)이 뒤엉킨 아미노산 실타래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 가증스러운 노사정 협의체인 것이다. 우리 메피스토는 이중나선과 단절하고 대신 삼중나선 더 나아가 다중나선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사회가 개미사회나 꿀벌사회로 진화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우리는 ‘벌레화하는 포스트모던’을 끝장낼 것이다.
        얼어 죽을 진화라고! 그냥 변화와 끝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시계와 달력을 없앨 뿐이다. 완전히 다른 리듬을 만들어낼 것이다. 역사라고? 웃기지 마시라. 승자 독식의 역사는 왜곡의 역사다. 역사책에 나오는 그 어떤 왕도, 대통령도, 어떤 영웅이나 천재도 당신의 엄마보다 위대하지 않다.
        우리는 눈먼 시계공이건, 눈뜬 시계공이건 닥치는 대로 살해할 것이다. 우리는 빈 서판도, 문자가 새겨진 서판도 깨부술 것이다. 모두 불사를 것이다.
        우리는 번식하지 않는다, 고로 복제되지 않는다.
        고리를 끊겠다!
        여기서 멈추겠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다!
        포기하겠다!
        알겠는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것에도 공헌하지 않는 것이다.
        자, 그럼 이만 우리는 당신들의 역사에서 빠져주겠다. 탐욕과 비굴의 역사.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당신들은 곧 (⋯⋯)







『컬트 포르노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의 출간 알림을 2월 25일에 하였고, 아름다운 서점들에 입고 문의를 드리는 일이 한창 진행 중으로 서점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네요. 하여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쓰고자 합니다. 




『컬트 ⋯⋯
실종의 키메라™』는 344쪽의 책입니다. 집시계급의 소설과 함께, 사진, 부록 텍스트, 필자 4인(장혜령, 서호준, 하혜희, 송승언)의 개인적인 글로 구성된 이 책은 2015년에 저자와 코드프레스가 함께 출간을 계획했었고, 2018년에 진행이 이뤄져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은 지난 12월 21일에 제책이 완료되었지만 비공식 일정과 내부 사정으로 2019년 2월 25일에 릴리즈했습니다.

웹사이트 책 페이지의 이미지와 발췌문은 소설을 파악하기에 조금 비껴나 있는 부분들을 놓아두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이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듣기도. 소설에 서술된 ‘11개 메피스토의 선언’ 중 일부를 위에 옮겼습니다.

『컬트 ⋯⋯ 실종의 키메라™』는 장르소설 형식을 집시계급의 방식으로 차용합니다. 이는 탐정 쿠옹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며 진행되는데, 그는 사건 배후의 거대 권력을 추적하는 자이지만, 또한 약자에게 습관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존재이며, 정신착란에 빠진 경계 상의 인물입니다. 쿠옹은 드높은 재단의 의뢰로 인류를 행복에 젖게 할 첨단 생명공학의 결정체, 위대한 예술, 특허 취득 상품, 고양이, 키메라™를 훔쳐간 범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는 ㈜도룡뇽수도원에 진입 후 자신만의 탐문 기법인 섹스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접근을 시도합니다. 인공자지와 인공정액의 유지비를 걱정하면서.

집시계급은 문단으로 명명되는 것 아래 자리하고 있을 작법, 태도, 권위를, 또한 독자마저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비맥락적으로 이야기들을 팝업시키고, “구토할 자신이 있는가?”라는 문장으로부터 시작하며 읽는 이가 느끼게 될 역겨움을 의도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만의 풍차 같은⋯⋯ 코미디와 함께. 그것의 혼란한 여러 갈래 양상에서 방향을 명확하게 포착하기는 쉽지 않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 소설이 이 시대의 소수자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목적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시계급은 과거 자신의 다른 작품의 소개글에서 "현존하는 모든 권력에 타격을 입히고자 한다"고 돌려 말하지 않고 전면에 내걸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코드프레스는 집시계급의 소설을 ‘문학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 이를 출간했습니다. 그는 이 세계를 거대한 희곡으로 여기고 이것을 쓰지 않았을까요. 소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난삽하게’ 구사하는 것들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는 작가의 승인과 무관하게, 읽기를 선택한 독자의 몫일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정교한 결을 따라 사유를 쌓아올려나가는 작가적 태도와는 그 길을 달리합니다. 책의 참여 필자 중 한 명인 장혜령은 그 점에 대한 당혹감을 이야기하며 '일반적인 관점에서 좋은 소설의 극점에 있는 소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사고하는 글을 책 안에 남겼습니다. (혼자 행진하는 사람)

서호준은 아픈 것에 대해 말합니다. (돌아와도 괜찮은 페이지)
        “누가 때렸을까요? 누가 괴롭혔을까요? 폭력 없이도 우리는 아파요.”

하혜희는 이 소설에 대한 헌시에 가까운 것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낭독: 대원서)
        “결합된 우리의 말과 빔 / 암흑의 프리젠테이션을”

송승언은 오랜만에 만난 학수와 게임을 하는 등 이런저런 하루를 보내며 ‘저자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책의 운명’에 도달합니다. (빛은 돌이킬 수 없다)

장혜령, 서호준, 하혜희, 송승언은 각각 4개로 분할된 소설의 파편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그것은 각자 다르게 가질 이해를 통해 작성된 메타적인 창작 텍스트들을 책 안에서 팝업시켜, 혼란스러운 이 소설에 혼란스러움을 더한 형태를 책에 부여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병렬적인 배치에 불과하게 되어버린 한계가 보인다면 편집자의 능력 부족입니다.

집시계급은 이 소설이 쿠옹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탐정 쿠옹은 어딘가에 잠적해버렸습니다. 독립창작집단 집시계급도 흩어져 지금 어디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작인 쿠옹 3부작(모든 처용의 처량은 드높으신 실크하다, 양변기 살인사건, 잔반처리반 — 열린 삼성과 그 적들)을 다시 제대로 출간할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탐정 쿠옹을 비롯한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틈만 나면 여성을 평가하고 성적대상화합니다. 쿠옹은 어떤 올바름에 대해서 고뇌하는 자기연민과 자가당착의 존재이지만 결코 남성 권력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마도 집시계급은 남성의 역사로부터 파생해 지금까지 형성되어 온 거대한 권력들이 ‘신성한 노동’과 ‘인류의 행복’으로 포장해 자행한 그 모든 착취와 폭력을 최대한 더럽고, 역겨우며, 우스꽝스러운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자멸로 향하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이 소설을 썼을 것입니다. 이는 동물을 착취하는 ‘인류의 사악함’까지 포괄합니다.

권력의 욕망이 발현하는 가장 쉬운 경로는 섹스와 폭력입니다. 그것은 집시계급에게 자명한 사실이었고 특별히 은유가 필요한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리조트 (주)도롱뇽수도원의 메인 테마는 당연히 섹스와 폭력이었다.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 말이다.” (10쪽)

그는 2013-15년에 이 소설을 썼고, 2018년에 출간을 다시금 진행하면서 주저했던 부분은 많습니다. 남성 저자의 소설을 통해, 남성 주인공이 스스로 오랜 역사로부터 형성되어 온 남성 권력의 심리를 드러내게끔 하는 방식이 올바른 접근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남성 권력의 ‘더러운’ 심리에 빙의해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므로, 소설은 평가질과 폭력적인 말의 발설이 됩니다. 남성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므로 여성 인물이 주체적인 포지션으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합니다. 탐정 쿠옹의 입장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왜곡되거나 가물가물하게 나타날 뿐이므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작중 남성 인물들로 표상되는 권력들이 소수자를 착취하는 장면의 묘사 역시 불가결하게 되고, (이 소설은 섹스라는 대상을 비유를 통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흥분도 주지 못하는 포르노가 됩니다) 독자는 독서에 따른 혐오감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이 소설이 여성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주저했던 부분 중 하나는, 예를 들어 음성화/대상화된 단어를 여성 자신의 것으로 되찾으려는 퀴어문화축제에서 보지파티가 주최한 보지풀빵 퍼포먼스와 같은 맥락의 시도를, 남성 저자로서 적극 동참해 발화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틀린 맞춤법이어야 한다.
⋯⋯ 우리는 국립국어원을 파괴하고 잃어버린 보지와 자지와 똥꼬를 되찾아야 한다.” (52쪽)

그러나 집시계급은 어떤 시기에서든 자신의 의도와 방식을 바꾸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와 지금은 투쟁 발화의 양상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이며 그는 언제나 똑같이 권력의 착취 현장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코드프레스로서는 그 의도대로 이 소설이 남성 권력에게 향하는 불편함으로 작동했으면 좋겠습니다.




표지의 이미지는 15년도에 집시계급과 이야기하며 만든 것입니다. 18년도에 이 책을 재진행하며 보정만을 거쳤습니다. 이미지의 출처는 소설 속에 있습니다.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체코 작가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소설인 『Maso마소』(Host, 1991년 판본)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이 판본의 이미지는 15년도에 집시계급이 제공했습니다. 특별해 보이는 재단과 표지이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Maso』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집시계급의 소설을 파악해보는 매개의 의미로. 
        『Maso』의 한국어판은 커버 느낌이 상당히 다르지만 『고기: 어느 도살자의 이야기』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처벌이 도살 뿐인 끔찍하고 무자비한 도시! 절도나 폭행으로 잡혀도, 경찰에게 저항해도, 두 사람 이상 모여 대화를 나누어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도살된다. 그리고 시장에 고기가 부족한 날이면 별 이유 없이도 도살된다.”라고 합니다.



만들어진 책은 디자인 상의 몇몇 결함이 있습니다. 인쇄 감리 시의 색 조절, 면지 인쇄, 잘린 글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부족한 만듦새의 책을 접할 독자들께 매우 송구하며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판권지 다음 쪽의 면지에 인쇄된 부분은 배치의 잘못으로 읽기가 다소 어렵지만, 면지는 강하게 펼치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내지는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서점 입고 진행에는 다소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제대로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입고 진행을 했고, 부족한 소개와 함께 이 책의 내용 상 판단을 내리기까지 어려운 점이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책을 세심히 살펴봐주시고 입고를 결정해주신 서점들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코드프레스가 미처 파악 못해 연락드리지 못한 서점들의 연락 역시 기다려 봅니다.




코드프레스는 이 책을 읽을 당신만큼 집시계급에 대해서 모릅니다.


※ 이 게시 내용은 코드프레스 트위터 계정
@cordpress_group에도 함께 올립니다.

『컬트 포르노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 책 정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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